우리 동네의 동명과 유래!
평생 그러려니 살고있었던 우리동네의 이름이 된 이유와 유래가 어떨때는 궁금하지 않으신가요?
오늘은 서울의 마포구의 동명과 독특한 유래를 가진 지역을 알아보도록 해요!
- 공덕동(孔德洞): 옛날 이곳은 '큰더기' 또는 '큰덕이'로 불렸습니다. 이는 큰 언덕을 의미하는데, 발음이 비슷한 한자인 '공덕(孔德)'으로 변형되어 현재의 이름이 되었습니다.
- 도화동(桃花洞): 이 지역에는 복숭아나무가 많아 봄이면 복사꽃이 만개했습니다. 그래서 '복사골'로 불리다가, 한자로 '도화(桃花)'를 사용하여 도화동이 되었습니다.
- 망원동(望遠洞): 한강변에 있던 아름다운 정자 '망원정(望遠亭)'에서 유래했습니다. 처음에는 '망원정동'으로 불리다가, 나중에 '정'이 생략되어 망원동이 되었습니다.
- 서교동(西橋洞): 이곳에는 '잔다리'로 불리는 작은 다리가 있었습니다. 다리의 서쪽 마을이라 '서세교리(西細橋里)'로 불리다가, 현재의 서교동이 되었습니다.
- 동교동(東橋洞): '잔다리'의 동쪽 윗마을이라 '윗잔다리' 또는 '동세교리(東細橋里)'로 불렸습니다. 이것이 변하여 동교동이 되었습니다.
- 마포동(麻浦洞): 한강의 포구로, '삼개'로 불리던 곳입니다. 이를 한자로 옮겨 '마포(麻浦)'라 하여 마포동이 되었습니다.
- 현석동(玄石洞): 조선 중기의 학자 박세채의 호인 '현석(玄石)'에서 유래했습니다. 그가 이 지역의 '소동우'에 거주하여 그의 호를 따서 동명이 정해졌습니다.
- 합정동(合井洞): 합정동은 조선 시대 공동 우물(井)을 함께 사용하던 마을에서 유래했습니다. ‘합(合)’은 ‘함께’, ‘정(井)’은 ‘우물’을 뜻합니다. 또한, 한강 나루터인 양화진과 가까워 교류가 활발했던 지역이기도 합니다.
- 연남동(延南洞): 연남동은 과거 ‘연희동’의 일부였으며, 연희동의 ‘연(延)’과 위치상 남쪽에 있다는 뜻의 ‘남(南)’을 합쳐 ‘연남동(延南洞)’이 되었습니다.
- 신수동(新水洞): 신수동은 조선 시대 ‘신수원(新水院)’이라는 관청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했습니다. ‘신수(新水)’는 ‘새로운 물’이라는 뜻으로, 이곳에 깨끗한 물이 많았던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.
- 상암동(上岩洞): 상암동은 마을에 큰 바위가 많아 ‘바위 고개’라는 뜻의 ‘암현(岩峴)’이라 불리던 곳에서 유래했습니다. ‘암(岩)’은 바위, ‘상(上)’은 위쪽이라는 의미로, ‘상암(上岩)’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.
- 대흥동(大興洞): 대흥동은 조선 시대 ‘큰 번영’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‘대흥(大興)’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. 이 지역은 과거 ‘공덕리’로 불리다가, 1946년 행정구역 개편 때 현재의 명칭이 되었습니다.
- 서강동(西江洞): 서강동은 한강의 서쪽에 위치해 있어 ‘서강(西江)’, 즉 ‘서쪽의 강’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했습니다. 조선 시대에는 나루터가 있어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였습니다.
- 염리동(鹽里洞): 염리동은 조선 시대에 소금을 관리하던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했습니다. ‘염(鹽)’은 소금, ‘리(里)’는 마을을 의미합니다. 이 지역에는 국가에서 운영하던 소금 창고가 있었으며, 한강을 통해 소금을 운반하던 중심지였습니다.
- 아현동(阿峴洞): 아현동은 조선 시대 ‘아현(阿峴, 작은 고개)’이라는 지명에서 유래했습니다. ‘아(阿)’는 작다, ‘현(峴)’은 고개를 뜻하며, 서울 서쪽에서 도성으로 들어오는 작은 고개가 있었던 데서 비롯되었습니다. 과거에는 한양으로 들어가는 교통 요충지였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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